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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숭동에 법과대학 '표지석' 설치
작성자 작성일 05-12-26 조회 3,970
옛 東崇洞캠퍼스 터에 「法科大學 標識石」 설치


본회(회장 丁海昌)는 종로구 동숭동의 옛 모교 부지(199번지)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표지석(標識石)」을 설치하고, 지난 12월 6일(화) 오후 2시30분에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은 △개회 △경과보고 △동창회장 인사 △법대학장 인사 △내빈소개 △표지석 제막 순으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權純旭(法大26, 변호사) 사무처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금년 3월에 각 회기동창회장단 간담회가 있었는데 당시 朴良漢(㈜임팩소프트 회장) 법대18회 부회장 등 여러 임원들이 모교와 동창회가 적극 나서서 동숭동캠퍼스에 ‘법과대학 표지석’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고하고, “동창회에서는 그간 여러 논의를 거쳐 오늘 제막식을 갖게 됐다”고 자세한 경위를 설명했다.

權 처장은 또 “낙산(駱山) 아래 동숭동캠퍼스가 자리하던 1949년 2월부터 1975년 2월까지 26년 간 이곳을 거쳐간 법대동문은 6,5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丁海昌(法大14, 변호사) 동창회장은 인사말에서 “법대동창들에게 추억이 서려있는 뜻깊은 장소에서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조그마한 표지석을 설치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우리들은 이 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신을 배웠고,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런 정신을 되돌아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곳에 와보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현재 이곳을 사용하고 있는 서울사대부설 초등학교와 여자중학교가 ‘바르다’라는 교훈을 많이 쓰고 있는데 저희들의 ‘정의’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 자리가 우리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근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丁 회장은 끝으로 “우리 동문들도 가끔 옛날이 생각날 때면 이곳을 찾아와 내일을 다시 한번 다지는 그런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고 동문들의 방문을 기대했다.

成樂寅(法大27) 법대학장은 “오랜만에 여러 선배님들을 모시고 동숭동캠퍼스를 찾게돼 반갑다”면서 “저희들도 늘 예전의 모교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배님들이 소중한 표지석을 만들어주시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成 학장은 “앞으로도 모교를 잊지 않고 후배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동량을 배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사말에 이어 내빈소개가 있었고, 다함께 표지석을 제막했다.
참석동문들은 많이 변해버린 교정을 바라보면서 학창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늦게나마 표지석을 갖게돼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과대학 표지석」은 화강암을 사용해 크게 세 부분(머릿돌, 가운데돌, 받침돌)으로 나눠 제작했다(호경석재공예사). 전체 높이는 98㎝이며 머릿돌 정면 오석판(烏石板) 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터(法科大學 址) 1949년 2월부터 1975년 2월까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자리하던 곳」이라고 새겼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동창회 임원은 孫一根(法大9, 한국일보 상임고문) 고문, 裵命仁(法大10, 변호사) 고문, 鄭又謨(法大14, ㈜태영인더스트리 부회장) 부회장, 李英俊(法大15, 변호사) 부회장 겸 제15회 동기회장, 吳允德(法大19, 변호사) 부회장, 千璣興(法大20,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부회장, 表桂鶴(法大14, 숙명여대 강사) 감사와 金鎭卓(法大14, ㈜명일기획 회장) 운영위원 겸 제14회 동기회장, 宋榮壽(法大14, 전 한진중공업 사장) 운영위원, 崔相曄(法大14, 변호사) 운영위원 그리고 曺圭香(法大18,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상임이사가 참석했다.

또한 회기별동창회 임원으로 위 14,15회 회장 외에 梁昌德(法大6, 전 한국D.I.C 고문) 6회 회장, 李元宅(한국청소년한마음연맹 총재) 13회 부회장, 李氾宰((유)날코코리아 회장) 16회 회장, 崔昌植(전 한국갱생보호공단 이사장) 16회 수석부회장, 金正國(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총장) 19회 회장, 李光澤(국민대 법대교수) 26회 동기회장이 동석하는 등 여러 동문이 뜻깊은 행사에 참석했다.

이밖에 외부인사로 서울사대부설 초등학교의 崔閏錫 교장, 金鍾德 교감선생님과 李洪子 부설여중 교장 등 여러 선생님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법과대학 표지석」 제막식은 지난 3월 열린 각 회기동창회장 간담회에서 법대동문들의 꿈과 낭만이 스며있는 ‘동숭동캠퍼스’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는 임원들의 적극적인 건의로 이뤄졌다.

당시 李南洙(㈜아이프라스틱 대표이사) 법대29회 총무는 “저희 29회가 동숭동에서 마지막으로 졸업한 세대이며, 올해로 졸업 30주년을 맞이했다”면서 “30주년 홈커밍 행사를 어디서(동숭동 또는 관악캠퍼스) 할 것인지를 두고 회원사이에 상당한 논란이 있었으나 아무래도 모교를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관악캠퍼스에서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朴良漢(㈜임팩소프트 회장) 18회 부회장은 “우리 동기들도 지난해 졸업 4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동숭동에 가봤는데 아무 흔적도 없어서 결국 시내호텔에서 행사를 한 바 있다”며 “뜻깊은 날 한번쯤 학창시절 캠퍼스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기에 동창회와 모교가 나서서 ‘과거에 서울법대가 있었다’라는 표지석이라도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법대 표지석(標識石) 설치 경과보고]

1.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해방 후 경성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와 경성법학전문학교가 통합되어 출발했다.
당초 법과대학은 옛 경성법전의 청량리 교사를 사용하다가 1948년 9월에 동숭동으로 옮겨와 대학본부 근처의 여러 곳―학부 1학년은 본부강당, 2학년은 강당 옆 강의실(후의 대학원 강의실), 3학년은 의대 생화학교실의 계단강의실, 전문부 2년은 사대 공작실, 전문부 3년은 수의대 시체해부실, 사무실은 본부 2층(다음 해 의대 생화학 교실로 옮김)―에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2. 당시 법대 상황은 강의실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교수들도 연구실은 고사하고 잠시 앉아 쉴 곳도 없는 매우 열악한 처지였다.
이에 따라 본부에 국립서울대학교가 되기 전 경성대학 법학과가 쓰던 연구실 20여 개를 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것을 이미 사용하고 있던 문리대 측에서 응할 리가 만무였다. 강의실을 두고 법대와 문리대 사이의 분쟁의 불씨는 남아 있었고 법대 행정은 셋방살이와도 같았다.

3. 그러던 중 1949년 2월에 바로 옆에 있던 경성고등공업학교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법과대학은 이곳(종로구 동숭동 199번지)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곳은 법대 단독으로 모든 건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대, 문리대와 공동사용이었지만 강의실과 교수연구실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4. 이듬해 6.25전쟁으로 법대는 부산으로 피난해 대신동(부산공설운동장 뒤편)에서 목조 가교사를 짓고 강의하다가 1953년 7월 휴전협정의 체결로 동숭동캠퍼스로 복귀하였다.

5. 3년 간의 피난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법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을 찾으며 나날이 충실한 법학교육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학교시설은 낡았고 강의실도 음산했었지만 법대생들은 향학열에 불타 있었다.

동숭동 낙산(駱山) 아래 법대 캠퍼스가 자리하던 이 시기(1949. 2월~1975. 2월) 26년 간 낙산캠퍼스를 거쳐간 법대동문은 6,500여명에 이르며, 사법부는 물론 행정부 등 각 분야에 지도적 인재를 양성하는 법학교육과 법대문화의 산실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다.

6. 법대는 1975년 3월에 정부의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관악캠퍼스로 이전했다.

7. 2005년 3월 8일, 10일 열린 법대동창회 각 회기동창회장 초청 간담회에서는 동창회와 모교가 적극 나서서 낙산캠퍼스 자리에 ‘법과대학 표지석’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박양한 법대 18회 부회장․㈜임팩소프트 회장>

당시 회기회장들은 젊은 날의 격정이 교차되던 낡은 강의실, 비좁은 도서관, 너저분한 학회실, 잔디밭, 농구 배구 정구장, 바둑실, 닫힌 강의실을 벗어나 토론하던 진아춘, 공락춘, 학림다방, 종로5가 막걸리 집들… 이들 모두 지금은 모습을 감췄지만 청운의 꿈을 키웠던 공간을 동문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표지석’만이라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8. 법대동창회는 이후 표지석 설치를 추진, 2005년 8월 23일에 서울사대부설 초등학교와 여자중학교를 각각 방문해 ‘서울법대 표지석 설치’를 의논하고,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9. 2005년 8월 30일, 9월 1일, 2일 열린 회기동창회장 간담회, 그리고 9월 8일 동창회 운영위원회에서는 표지석 도안,문안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10. 2005년 11월 10일, 법대동창회는 서울법대 표지석 도안을 최종 확정하고 업체(호경석재공예사: 대표 임건호)에 제작을 의뢰했다.

11. 2005년 11월 22일, 권순욱 동창회 사무처장은 표지석 설치장소를 협의하기 위해 동숭동을 방문해 서울사대부설 초등학교장(최윤석), 여자중학교장(이홍자)과 협의하여 결정했다.

12. 2005년 11월 24일, 법대동창회는 옛 서울법대 자리에 ‘표지석’ 설치공사를 완료했다.

13. 그리고 오늘(2005년 12월 6일), 서울법대가 동숭동을 떠난 지 30년 만에 이곳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표지석’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

법대동창회는 새 세대를 육성하는 보금자리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이곳에 ‘법과대학 표지석’을 세움으로써 법대동문들에게 학창시절의 꿈과 낭만이 스며있는 명소로서 영원히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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